인체와 의학에 관심 있다면, 헌터리안 뮤지엄(Hunterian Museum)

의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런던에는 수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헌터리안 박물관(Hunterian Museum)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곳이다. 이곳은 미술품이나 고고학 유물이 아니라 인체와 의학, 그리고 외과의 발전 과정을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18세기 외과의사이자 해부학자인 존 헌터(John Hunter)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현재는 영국 왕립외과학회(Royal College of Surgeons) 건물 안에 자리하고 있다. 2023년 약 5년간의 대규모 리모델링을 마친 뒤 다시 문을 열면서 더욱 현대적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현재는 2,000점이 넘는 해부 표본과 수술 기구, 의료 기록 등을 통해 고대부터 현대 로봇 수술까지 외과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인체 해부 표본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방문하면 일반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조금 놀랄 수도 있다. 입구부터 차분한 조명과 유리병 속 표본들이 이어지고,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의학 연구실처럼 느껴진다. 화려하거나 재미있는 전시는 아니지만, 인체 구조와 의학의 발전 과정을 실제 표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교육적인 공간이다. 의학이나 생명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 런던의 색다른 무료 박물관을 찾는 여행자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장소다.
호기심과 놀라움이 공존하는 전시
헌터리안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인체와 동물 표본을 이용한 전시다. 수백 년 전 제작된 해부 표본부터 희귀한 동물 골격, 태아 발달 과정, 질병의 변화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 설명을 읽으며 관람하다 보면 단순히 '신기한 전시'가 아니라 당시 의학자들이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특히 전시는 단순히 표본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함께 설명해 준다. 과거에는 위험했던 수술이 현재는 어떤 기술로 발전했는지, 마취와 소독 기술이 외과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는지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의학의 역사뿐 아니라 윤리와 연구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박물관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도 이런 종류의 전시는 쉽게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다만 실제 인체 표본과 장기 등이 전시되어 있으므로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하거나 혈액, 해부 표본 등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관람 전에 미리 참고하는 것이 좋다.
런던 무료 박물관 중 가장 독특했던 경험
런던에는 무료 박물관이 정말 많지만, 헌터리안 박물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대영박물관이나 내셔널 갤러리처럼 유명한 관광 명소는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전시에 집중하기 좋았다. 규모 자체는 아주 크지 않아 천천히 둘러봐도 1~2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전시 하나하나를 자세히 읽다 보면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물게 된다.
이곳은 단순히 의학 전시를 보는 공간이라기보다 인간의 몸과 생명의 역사,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연구와 발견의 과정을 이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는 다른 주제의 박물관을 경험하고 싶거나, 런던에서 조금 색다른 장소를 찾고 있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볼 만하다. 무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예약을 하면 더욱 편리하게 입장할 수 있으며, 영국 왕립외과학회 건물 자체도 아름다운 고전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건축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일반적인 관광 코스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런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숨은 명소라고 생각한다.

직접 다녀와서 느낀 점
존 소안 박물관을 둘러본 뒤, 바로 옆에 있는 헌터리안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미리 예약을 했다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지만, 나는 예약 없이 방문해 약 5~10분 정도 대기한 뒤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굉장히 큰 코끼리의 고관절이었다. 그 주변으로는 특수한 보존액에 담긴 다양한 생물학적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초반에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씩 살펴보며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롱 갤러리(The Long Gallery)’에 들어서는 순간, 존 헌터라는 인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예상하지 못했던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사람의 손가락과 장기, 태아, 강아지, 알에서 막 부화한 악어 등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작은 동물들의 표본은 쉽게 시선을 두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생명과학을 전공하며 쥐와 개구리를 해부해 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생명을 직접 마주하는 해부 과정에서 큰 괴로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도 이미 해부된 동물이나 인체 장기를 보는 것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지만, 눈조차 뜨지 못할 만큼 어린 동물과 아기의 표본은 바라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나에게 헌터리안 박물관은 단순히 신기하고 흥미로운 전시 공간이라기보다, 과학의 발전과 생명윤리에 대해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 장소였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관람이었지만, 해부학과 의학의 역사, 인체와 생물의 구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매우 깊이 있고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헌터리안 박물관을 방문하셨다면 근처 존 서안 박물관도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본 글은 헌터리안 박물관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박물관의 역사와 운영 정보는 Hunterian Museum 공식 홈페이지 및 Royal College of Surgeons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운영 시간과 예약 정책은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