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영국의 집을 만나는 Museum of the Home, 런던 무료 박물관

300년 된 건물에서 만나는 런던 사람들의 ‘집’ 이야기
런던 혹스턴에 위치한 Museum of the Home(뮤지엄 오브 더 홈)은 이름 그대로 ‘집(Home)’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다. 유명 화가의 작품이나 화려한 왕실 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런던의 다른 박물관들과 달리,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공간에서 살았고 집 안을 어떻게 꾸몄으며 시대에 따라 생활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박물관이 자리 잡은 건물 자체에도 오랜 역사가 있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붉은 벽돌 건물은 1714년에 지어진 알름스하우스(Almshouses)로, 당시에는 노년층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건축 비용은 영국의 상인이었던 로버트 제프리(Sir Robert Geffrye)가 남긴 유산에서 마련되었다. 이후 1911년 런던 카운티 의회가 건물과 정원을 매입했고, 새로운 용도를 고민한 끝에 1914년 Geffrye Museum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가구와 목공예품을 중심으로 전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오래된 가구를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영국 사람들의 가정생활 자체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변화했다.
2019년에는 현재의 Museum of the Home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래서 300년이 넘은 역사적인 건축물과 상당히 현대적인 전시 공간이 함께 존재한다. 화려한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런던의 다른 박물관과는 조금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1630년부터 미래까지, 시대별로 달라지는 런던의 집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전시 중 하나는 Rooms Through Time이다. 이름 그대로 서로 다른 시대의 집 내부를 실제 방처럼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전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런던의 집이 수백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단순히 오래된 소파나 테이블을 진열장 안에 넣어놓은 방식이 아니라 벽지와 바닥, 커튼, 벽난로, 조명, 가구와 생활용품까지 하나의 방으로 꾸며 놓았기 때문에 그 시대 누군가의 집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는 1630년의 Hall에서 시작한다. 이후 1695년과 1745년, 1790년의 응접실을 지나 1830년 Drawing Room, 1878년 Townhouse 등으로 이어지는데, 시대가 바뀔 때마다 가구뿐만 아니라 벽의 색깔과 장식, 직물, 공간의 사용 방식까지 달라지는 것이 눈에 띈다. 1913년에는 유대인 가족이 살던 공동주택의 모습을 볼 수 있고, 1956년 신혼부부의 공간, 1979년 가족의 거실을 지나면 우리가 비교적 익숙하게 느끼는 모습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전시가 과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5년 하이라이즈 플랫에는 컴퓨터와 TV, CD 등 당시의 생활용품까지 등장하고, 2024년에는 베트남계 Nguyễn 가족의 런던 생활을 표현한 공간도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무려 2049년의 미래 주거 공간까지 상상해 놓았다. 박물관은 2024년 동런던 지역 주민들과 협업해 새로운 시대별 공간들을 추가했는데, 덕분에 영국 중산층의 전통적인 집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가족 형태, 실제 런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전시에 담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인테리어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대가 변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 자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정원까지 함께 둘러보기 좋은 무료 박물관
Museum of the Home을 방문한다면 실내 전시만 보고 나오기보다는 야외 공간도 함께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물관에는 Gardens Through Time이라는 독특한 정원이 있는데, 실내에서 시대별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곳에서는 도시의 정원이 세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박물관의 허브 가든과 시대별 정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꽃과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내 전시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 좋은 공간이다.
박물관 앞쪽의 Kingsland Road Gardens도 여유롭게 쉬어가기 좋다. 과거 알름스하우스로 사용되었던 긴 붉은 벽돌 건물과 잔디, 오래된 나무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박물관을 본 뒤 잠시 앉아 쉬거나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Kingsland Road Gardens에서는 피크닉도 허용된다. 반면 Gardens Through Time에서는 음식물을 먹을 수 없으니 방문할 때 참고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상설 갤러리 입장이 무료이며 별도의 사전 예약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2026년 8월 현재 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및 Bank Holiday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일반 월요일에는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 가장 가까운 역은 Hoxton으로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관람에 최소 1시간 정도를 권장하고 있지만, 시대별 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정원까지 함께 돌아본다면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잡는 것을 추천한다. 런던의 유명 관광지를 어느 정도 둘러본 뒤 조금 색다른 무료 박물관을 찾고 있다면 방문해 보기 좋은 곳이다.
직접 다녀와서 느낀 점
솔직히 말하자면 Museum of the Home은 지금까지 런던에서 방문했던 다른 박물관들과 비교했을 때 전시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시대별로 재현해 놓은 집의 모습을 한 공간씩 비교해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전시 내용이 아주 풍성하거나 오랫동안 머물며 둘러볼 만큼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이곳만을 보기 위해 먼 거리에서 찾아오기보다는 근처를 방문할 계획이 있을 때 일정에 가볍게 포함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다만 입장료가 없는 무료 박물관이고 실내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무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 잠시 날씨를 피해 쉬어가기에는 괜찮다. 화려하거나 유명한 전시보다 영국의 시대별 주거 공간과 생활 방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름의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 관람 시간이 길지 않아 여행 일정 중 부담 없이 들르기 좋다는 점 역시 이곳의 장점이다.
특히 주말에는 박물관 인근의 Columbia Road Flower Market을 비롯해 Brick Lane Market과 Old Spitalfields Market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세 곳 모두 Museum of the Home과 묶어서 방문하기 좋은 동런던의 대표적인 명소들이다. 따라서 이 박물관을 하루 일정의 중심으로 삼기보다는 마켓들을 둘러보는 길에 잠시 들러 전시를 구경하고 쉬어가는 장소로 계획한다면 훨씬 만족스러운 방문이 될 것 같다
* 이곳에 들르셨다면 근처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과 브릭레인 마켓을 함께 둘러보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 본 글은 Museum of the Home 직접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박물관의 역사와 전시 구성 및 운영 정보는 Museum of the Home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운영 시간과 전시 내용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